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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부정공>소잠공휘동찬묘갈명(小潛公諱東璨墓碣銘)
小潛公諱東璨墓碣銘 小潛趙君篤承父祖之訓雖東炎西勢滔天之中未嘗改志染世惟以高髺大冠讀書善身而終其世鳴呼君子人也君兄弟五人序居三其操守皆與君難兄弟而獨其幹辨惟焉其家中間西遷雪山東徙方文家政間關盖君多綢繆而至於宗事先役莫不皆然常謀父祖文字壽傳而財力終朱敷則迺獻耶耕全土而終其刊役後以士友之助雖不沒此土于以見其輊財重義之迴出等夷而又以見其孝思之出人萬萬也君諱東璨字光淑趙氏以玉川府院君元吉爲受貫之祖子瑜虔谷亨謙川院孫智崙相好亭相好之孫大成梅窓享曲水武曲兩祠其子怡中司馬自順天移谷城諱洙與昌灌高若曾祖韋堂諱章燮篤於學行考一軒諱敏植亦世其學皆有文集行世妣順與安氏晦軒裕后榮鎭其父純宗己酉三月二十四一生辛酉正月十五日得聖壽墓谷城面楮田村后庚坐原配耽津崔氏義士濟學女有婦德男權容善容學有進就而夭女適幸州奇德文孫昌翼相翼曾翼肖子權容將揭德于阡途不別錄事行而請文盖以余爲其父友而自知故爾余交晚居遠無以知其事行之細微乃記行治之大槩雖若可恨然未有守志君子而忽諸云爲則可擧大而包小因畧而致詳庸何傷乎銘曰以孝以友忠實之姿兼回因致亨之才不得時未發而卒鳴呼惜哉峕癸亥流火月下澣友人 竹山 安秉柝 撰 소잠공휘동찬묘갈명(小潛公諱東璨墓碣銘) 소잠(小潛) 조군(趙君)은 부조(父祖)의 교훈을 이어받아 비록 동양(東洋)과 서양(西洋)의 세력이 기승을 부려도 뜻을 바꾸거나 세파에 물들지 않고 상투를 높이 틀고 큰 갓을 쓴 채로 독서하다가 훌륭한 일생을 마쳤으니, 참으로 군자(君子)라고 하겠다. 공은 다섯형제 가운데 셋째이다. 다섯 형제의 지조를 누가 더 낫다고 할 수는 없으나 주선(周琁)함은 공이 대부분 혼자하였다. 그 집안이 중간에 서쪽 설산(雪山)으로 이사를 갔다가 다시 동쪽 지리산(智異山)으로 이사하였는데, 이런 집안 일은 대개 공이 계획하여 행한 것이요, 종사(宗事)나 선대의 일을 하는 것도 모두 그러하였다. 일찍이 공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문집(文集)을 간행하려고 하였으나 재정이 모자라자 자신이 경작하던 땅 전부를 내어 간행을 마쳤다. 후에 비록 사우(士友)들의 도움으로 그 땅을 팔지는 않게 되었으나 그의 여기에서 재물을 가볍게 여기고 의리를 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아주 남다름을 볼 수 있겠으며, 또 효성심이 지극함을 알 수 있다. 군의 휘(諱)는 동찬(東璨), 자는 광숙(光叔)이다. 조씨는 옥천 부원군(玉川府院君) 원길(元吉)을 본관을 얻은 시조로 하며, 아들 휘 유(瑜)는 호가 건곡(虔谷)인데 겸천서원(謙川書院)에 배향되셨다. 그의 손자 지륜(智崙)은 상호정(相好亭)이며, 상호정의 손자 대성(大成)은 호가 매창(梅窓)으로 곡수서원(曲水書院)과 무곡서원(武曲書院)에 배향되셨다. 그의 아들 이(怡)는 진사(進士)인데 순천에서부터 곡성으로 이사하였으며, 휘 수(洙), 휘 창관(昌灌)이 고조와 증조(曾祖)이다. 할아버지 위당(韋堂) 휘 장섭(章燮)은 학문이 뛰어났으며, 아버지 일헌(一軒) 휘 민식(敏植) 역시 학문을 하여 모두 문집(文集)이 세상에 전하고 있다. 어머니는 순흥인(順興人) 안영진(安榮鎭)의 따님으로 회헌(晦軒) 안유(安裕)의 후손이다. 공은 순종(純宗) 기유년 三月 二十四日에 출생하여 신유년 정월 十五日에 돌아가셨는데 묘소는 곡성군 곡성면 저전촌(楮田村) 뒤 경좌(庚坐) 언덕이다. 배위는 탐진인(耽津人) 의사(義士) 최제학(崔濟學)의 따님인데 부덕(婦德)이 있다. 아들은 권용(權容), 선용(善容)인데 선용은 학문이 진취되다가 일찍 죽었다. 딸은 행주인(行州人) 기덕문(奇德文)에게 출가하였으며, 손자는 창익(昌翼), 문익(文翼), 상익(相翼), 증익(曾翼)이다. 큰아들 권용이 장차 묘에 비를 세우려 하면서 행장(行狀)도 없이 글을 청했는데 이는 대개 내가 그의 아버지 친구로서 잘 알기때문이다. 내가 공과 만년에야 사귀었고 또 사는 곳이 멀어서 자세한 사적까지는 자세히 알지 못하여 이에 행적의 대개만 적게 된 것이 한스럽다. 그러나 뜻을 지키는 군자(君子)를 소홀히 함이 없었으며 큰 것만을 들면 작은 것은 거기에 다 포함시키면 간략하지만 자세한 것과 마찬가지이니, 서운할 것이 무엇인가. 다음과 같이 명(銘)한다. 뛰어난 효성과 우애 충실한 모습 겸했네 以孝友充 實之姿兼 곤궁을 형통하게 하고 재주지니고 때 못얻었네 回困致亨 才不得時 능력 발휘 못하고 돌아가시니 아, 애석하도다 未發而卒 鳴呼惜哉 癸亥年 七月 下旬 竹山(죽산) 안병탁(安秉柝) 삼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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